출처 : 곰보금자리프로젝트

우리가 법으로 보호하는 지리산 반달가슴곰은 러시아 연해주나 중국, 북한 쪽에 사는 ‘우수리 아종’인 지리산 반달곰인 반면, 개인이 키우는 반달가슴곰은 일본·동남아 출신으로 아종*이 달라 멸종위기 야생동물로 보호받을 수 없죠.

하지만 전 세계 모든 반달가슴곰은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가간 거래를 금지하는 협약(CITES)에 따라 아종이나 교잡종 여부에 상관없이 모두 보호되며 무역 및 거래를 금지하고 있어요. 국내 야생생물법도 반달가슴곰을 ‘종’ 수준에서 국제적 멸종위기종으로 명시하고 있고요.

그런데 예외적으로 나이가 10년 이상인 인공사육 중인 반달가슴곰을 도살해서 가공품의 재료 목적으로 웅담**을 채취하는 것은 합법이라고 인정했어요. 결국 곰을 가두어 기르고 웅담을 채취하는 것을 합법화하기 위해 법을 맞춘 것이죠.

이렇게 멸종위기종인 곰의 웅담 채취를 허용하는 국가는 현재 한국과 중국뿐이에요.

*아종(subspecies): 종(species)을 다시 세분한 생물 분류상의 한 단계로, 종의 하위 단계이고 변종의 상위 단계를 뜻해요.

**웅담 : 곰의 쓸개에서 나온 즙으로, 귀한 약재로 알려져왔으나 현재는 대체 약재를 쉽게 구할 수 있어요. 윤리적인 문제도 가지고 있고요.

왜 이렇게까지 하게 된 거야?

멸종위기종을 사육하게 된 아이러니한 이 상황을 설명하려면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해요.

한국에서 처음 곰 사육이 시작된 건 1981년부터인데요. 한국 정부는 농가 소득 증대를 위해 해외 수출 목적으로 500여 마리의 곰을 들여와 사육을 장려하기 시작했어요. 쉽게 말해 곰을 수입해서 키운 다음 다시 수출하는 방식으로 돈을 벌도록 한 거죠.

하지만 앞서 말했듯 곰은 국제적 멸종위기종이에요. 곰을 보호하자는 여론이 거세자 5년 뒤 곰 수입을 중단시켰어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93년, 한국은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가간 거래를 금지하는 협약(CITES)에 가입하면서 곰 수출도 불가능하게 됐죠. 돈을 벌기 위해 사육곰을 키우던 농가들은 경제적 가치를 기대할 수 없게 됐어요.

그러던 1999년, 정부는 농가들의 항의에 대책을 내놓았어요. 농가 손실 보전을 위해 24년 이상 곰의 웅담 채취를 합법화했죠. 그걸 2005년엔 다시 10년으로 낮춰, 그 시간이 지나면 도살할 수 있게 했어요.

애물단지가 된 사육곰

그 사이 처음 들여올 당시 500여 마리였던 사육곰은, 2000년대 중반 이미 1,400여 마리로 늘어난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수출도 불가능해지고 웅담이나 곰 발바닥의 수요도 줄어들어 사육 곰들은 애물단지가 되어 버렸죠.

사육농가에서는 “곰들은 4년이면 다 크는데, 그 뒤로도 한 해에 70~80만 원씩 사룟값을 들이며 6년 이상 키워야 한다”라고 한숨지었어요. 곰들도 가축으로 분류해 자유롭게 도축할 수 있게 해달라 요구했죠.

이들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농가에서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19g의 웅담을 생산하기 위해 여러 '노력'이 이어졌어요. 다 자란 150kg의 반달가슴곰의 철창의 크기를 줄이고 사료의 질을 낮췄죠.

구조가 필요한 사육곰

출처 : 애니멀아시아

그렇게 사육곰들은 자신의 몸집만 한 철창 안에서 움직이지도 못한 채, 자신이 싼 똥을 밟기 싫어 앉지도 기대지도 못한 채로 살아야 해요. 

곰의 평균 행동 권역은 약 100㎢(약 3천 평)이지만, 사육곰 대다수는 1평 남짓한 철창에 갇혀 지내고 있어요. 그곳을 나올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인 자신의 10살 생일을 기다리면서 말이죠.

이로 인해 좌절감과 스트레스로 인해 이상 행동을 보이기도 해요. 어떤 곰은 1시간 동안 같은 장소를 반복적으로 왔다 갔다 해요. 지속적으로 머리를 좌우로 흔들기도 하죠. 전형적인 '정형행동*’에 가까운 모습이에요.

동물권행동 카라에 따르면 한 농가는 모든 사육곰이 머리를 흔들고, 좁은 보폭으로 왔다 갔다 하고, 일부는 앞발을 물고 씹는 모습을 보였다고 해요.

한 농가의 갓 태어난 새끼가 다른 곰에게 물려 한쪽 팔을 잃었어요. 눈빛은 두려움이 가득해요. 뜨겁게 달궈진 쇠창살을 딛고 있기에 발바닥이 쩍쩍 갈라졌고요.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한쪽 눈을 잃은 곰도 있었어요.

한편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살아있는 곰의 쓸개에 관을 삽입해 쓸개 즙을 받아먹는 일이 버젓이 성행했어요. 곰들은 이러한 고통을 느끼고 다른 곰의 고통에 공감도 할 줄 아는 지능이 높은 존재예요. 

실제로 산 채로 쓸개를 채취 당하는 새끼곰을 구하러 우리를 부수고 나온 엄마곰의 이야기가 전해진 적이 있어요. 아기곰 발에 묶인 쇠사슬을 끊지 못하자 아기를 죽인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또한 곰의 사육과 도축은 어떠한 규제도 없이 이루어져요. 어느 농장에서 살아있는 곰의 쓸개 즙을 채취하는지, 불법으로 번식을 시키고 있는지 관리 감독하지 않죠. 도축 방법 또한 낮은 수준의 권고기준조차 없어요. 마취약 주사 후 피를 제거하는 방법부터 목을 매다는 교수형까지 다양해요.

*정형행동 : 격리 사육하는 동물이나 우리에 갇힌 동물에게서 종종 보이는 행동으로,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해 하는 반복적 이상행동을 말해요.

곰들의 탈출

한국에서 곰을 사육한지 30여 년이 지나면서 농가의 사육시설이 많이 낡았어요. 

실제로 녹색연합이 기록한 사육곰 탈출 사례만 2000년부터 지난 20여 년간 21회에 달하죠. 지난해에만 울산 울주에서 탈출한 곰이 포획됐고 경기 용인에서 7월에 한 마리, 11월에 5마리가 탈출했어요.

탈출한 사육곰은 엽총에 사살되거나 농장주에게 돌아가요. 2020년 7월 탈출했던 새끼곰 한 마리도 잠시 자유를 맛봤지만, 결국 포획돼 다시 철창으로 돌아갔어요. 국내에서 사육곰이 돌아갈 곳은, 철창뿐이죠.

출처 : 녹색연합

최근 5년간 불법 증식된 새끼곰 36마리 중 7마리는 열악한 사육환경 속에서 폐사한 것으로 조사됐어요. 견디다 못한 곰들이 탈출해 사살되거나 질병에 걸려 죽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오래 기다린 자유

이들은 각각 2008~2013년 태어나 평균 수명이 20~25년인 것을 고려하면 인생의 반을 좁은 철창 안에서 살았는데요. 이들을 키우던 농장주도 수익성 악화로 이러지도 못해 사육곰을 사실상 방치하던 와중에 동물자유연대의 설득에 소유권을 포기했죠.

구조 후 국내 어디에도 곰들을 받아주지 못했기에 동물자유연대는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 인근에 위치한 야생동물 생츄어리*(TWAS)로 도움을 요청했어요. 한국의 사육곰 실태를 알게 된 TWAS는 흔쾌히 사육곰들을 받아주기로 했죠.

*생츄어리 : 야생과 비슷하게 꾸며놓고 갈 곳 없는 야생동물을 돌보는 공간이에요. 동물을 전시하는 동물원과는 다르며 생츄어리에서는 동물을 연구의 재료로 사용하지 않아요. 동물의 복지와 안녕을 목적으로 하는 곳입니다.

농가도 야생도 아니다

그런데 왜 사육곰들이 지리산 반달가슴곰처럼 야생으로 갈 순 없었을까요? 

그건 바로 사육곰은 야생에서 생존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에요. 평생 동안 철창에서 갇혀 주어지는 먹이만 먹었기에 사람의 관리 없이는 생존이 어려워요.

또한 사육곰이 야생에서 살아남는다고 해도 한국의 반달가슴곰 아종과 다르기 때문에 유전적 교란이 생길 수 있고요.

한국 내에는 곰을 보호할 보호소가 없어요. 구조된 사육곰들은 열악한 농가에 남아있을 수도, 그렇다고 야생에 갈 수도 없는 실정이었죠.

아직 갇혀있다

동해에서 살던 곰들은 미국으로 떠났지만 한국엔 여전히 비슷한 처지에 있는 농장의 곰들이 무려 360마리나 남아있어요. 

2010년대 환경단체는 정부에게 새끼 곰 출산으로 인한 증식을 금지하는 정책을 요구했고 마침내 시행되었죠.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모든 사육곰의 중성화가 완료되었어요.

따라서 더 이상 철창 안에서 태어나는 사육곰은 없지만 지금 남은 사육곰들도 10살이 되면 웅담을 위해 죽을 위험에서 벗어나진 못한 상황이에요.

2015년 마지막으로 태어난 사육곰이 10살이 되는 2024년 이전에는 사육곰 사업이 사실상 자연히 끝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철창 속 곰들을 구출할 방법이 필요하죠.

곰답게 살 수 있는 곳

그래서 이번에 사육곰들이 떠난 TWAS처럼 한국에도 생츄어리가 필요해요.

TWAS는 1000만 평이 넘는 부지에 야생과 다를 바 없는 환경이 조성돼 있어요. 사육곰이 아닌 반달가슴곰으로서 각자의 본능과 습성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기 충분한 곳이죠.

베트남의 생츄어리 모습 / 출처 : 곰보금자리프로젝트

중국에서조차도 시에서 부지를 제공한 사육곰 생츄어리가 있어요. 베트남과 캄보디아도 국가가 부지를 지원해 곰을 위한 생츄어리를 만들었고, 불법으로 거래되는 사육곰을 구출해 보호하고 있답니다.

이에 환경부는 작년 8월부터 정부·농가·시민사회·전문가가 참여하는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곰 사육 종식 방안을 논의한 끝에 12월 종식에 합의했어요. 2026년부터 사육이 전면 금지되며 전남 구례군(2024년)과 충남 서천군(2025년)에 각각 하나씩 곰 생츄어리를 완공할 예정이에요.

그런데 정부가 설치하는 보호시설이 수용할 수 있는 사육곰 수에도 한계가 있어 추가로 시설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2026년 전에 일부가 죽더라도 수백 마리일 것으로 추정되거든요. 예산 등의 문제로 구례군과 서천군에 짓게 되는 보호시설에는 총 100마리 남짓한 곰만 들어갈 수 있죠. 

지난해 강원도 화천군의 한 농가가 사육을 포기한 곰들을 매입·구조해 2마리는 죽고 13마리를 보호 중인 '카라'와 '곰보금자리프로젝트'는 자체적으로 민간 생추어리도 건립하려 추진하고 있습니다.